가삿말에 진심을 담지 마

1.
미국에 간다니 뭔가 사고 싶어 죽겠는데 돈이 없어서 고통받고 있다. 갈 돈도 있고 놀 돈도 있는데 살 돈이 없어.
하지만 뭘 사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냥 뭔가 사고 싶은 거니까 다 부질없는 욕망일 뿐이다.
난 큰 물욕도 없고, 뭘 사도 그렇게 아끼지는 않는데, 이 쇼핑에 대한 갈망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결론은 로또. 혹은 라스베가스.
로또.
오늘 밤에는 말만 하지 말고 사기도 하자.
로또를 사겠다고 하자 아빠가 깜짝 놀라며 "로또를 사겠다고? 뭐. 취미라면 괜찮다."씁슬하게 인정하셨다.
그럼 로또로 직업하겠습니까.


2.
내가 크고 좋은 걸 사는 스타일이 아니라 손에 쥐고 있는건, 캐시미어 코트 하나밖에 없는데 생각해보니 작년에 홍콩, 발리 올해 일본에 갔다오고 지금 미국에 가니까, 돈이 없는 것도 너무 당연한 것 같았다. 깨알같이 놀았네.

그래서 난. 난 그저.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는데, 네이트에 F밖에 없었는지 아님 내가 엘레이리안에게 관광정보를 묻고 있었는지, 작년 홍콩 발리, 올해 일본 미국 가면 돈 없는게 정상이지? 라고 물었다.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많이 벌어도 많이 쓰는 사람은 항상 없고 적게 벌어도 잘쓰면 어느정도 있겠죠." F said.
"그래. F는 참 교과서같은 아이야. 고맙다." I said.
"ㅋㅋㅋ 하나도 안 고마워라고 읽혀요."
"F는 참 똑똑한 아이야. 흐뭇하다."
"아 짜증 ㅋㅋㅋ"

짜증? 평범한 한국인, 혹은 한국 토종이었으면 지금 나한테 꼰대질하다 짜증이라고 한거냐고. 잘 놀다가 갑자기 성질부리는 내 꼴을 볼 수 있었겠지만, 난 외국인에게는 관대하니까. 사대주의. 종미.

게다가 F는 얼마전 내가 뭐라고 놀리자
"... 기쁨조가 되어버렸구나. 또."
이런 말을 했다.

.....아니야...
결코 그렇지 않아...
기쁨조는 F보다 어리고 예뻐서 보는 것 만으로 나에게 기쁨을 줄 때 쓸 수 있는 단어라고 알려주자 매우 부끄러워 했다.
하고 싶었던 말은... "아주 날 가지고 놀아라. 갖고 놀다 제자리만 갔다놔라." 같은게 아니었을까...


3.
얼마전 썼다 아무도 아는 척 안해서 어쩐지 부끄러워서 지운 포스팅이 있다.
나는 윤동주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어.

인터넷 속에서 페북은 즐겁고 타임라인은 흐르고
싸이월드는 접었고 이메일은 안보내고 이글루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포스팅이 있습니다.

어쩐지 그  포스팅이 미워서 지웠습니다.

지우고 생각하니 그 포스팅이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열어보니 포스팅은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포스팅이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하여간.
그리고 이건 얼마전 추천사 패러디 칭찬받고 신나서 계속 패러디하는거 맞다.
난 이제 남이 뭐 잘한다고 칭찬하면 다른 사람이 질릴때까지 연습하고 놀아야지.
지긋지긋해서 막고 싶으면 다른 칭찬을 하라고. 어서 빨리.


4.
동생이 덴마크 왕세자 초청 가든파티에 갈거냐고 물어서 어떻게 초대 받았냐고 물어보자 쇼핑몰 VIP라서 그렇다고.
그렇다 해도 소비총액이 동생이 소수정예로 추천받을 레벨은 아닌 것 같은데 왜 너를 부른거냐고 물어보자 "물관리하나보지"라고 대답했다.
동생은 그레이스풀한 인사말을 연습하겠다고 키득거렸다.
하지만.
쇼핑몰은 잘못 판단했다.
동생 저질이야.

어떤 일반인 여자가 왕세자와 사진 찍는걸 보고, 동생이 왕세자 한가한 틈을 타서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외국인들이 막으며 안된다고 했단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왕세자와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고. 당연한 말씀. 하지만 동생은 경호원(?)이 딴짓하는 틈을 타서 왕세자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저질이야. 왕세자에게 직접 사진 찍어도 괜찮겠냐고 부탁하자 왕세자가 흔쾌히 수락했단다. 후. 높으신 분들의 관대함은 시민의 심금을 울린다니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사진만 찍어줄 줄 알았던 왕세자는 동생에게 갑자기 여기 자주 오냐고 질문했단다. 왕세자가 하문할 줄 몰랐던 동생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예스. 아이 러브 쇼핑.^^"

이렇게 대답했다고...
아 저질이야...
나라망신...

앙님은 "저나 제 주변 사람 인생은 시트콤 같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웃긴애를 못봤다고 말씀하셨지만, 이런건 역시 시트콤같은...


5.
5월 15일날 친구를 만났다.

"요즘 디아블로 때문에 난리더라." 내가 말을 꺼냈다.
"난 게임에 관심없어." 친구가 말했다.
"나도 게임 안하잖아."
"하지만 넌 다 아는 척 하고 싶어하잖아."

그래...

친구는 결혼 준비 중이고, 이렇게 착하고 예쁜데 혼자인 나를 안타까워 한다. 그러더니

"널 누구 소개시켜줄 사람이 없어." 친구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하루이틀 일이야. 됐어. 나 요즘 좀 진정되서 괜찮아." 요즘은 다시 쿨해졌거든.
"여자는 예쁘고 조건좋으면 나이 들어도 좋은 사람 만나는 것 같아..우리 사수 77년생인데 이번에 결혼하는데 남자 아주 괜찮아..."

나를 위로하는 말인가 고마워하는데 친구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예뻐야해..."

위로가 아니라 충고였구나.
고맙다.
넌 정말 솔직한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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