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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진보 좌파의 매트릭스 part 1. 반문화의 탄생 프로이드, 캘리포이나에 가다 정상적이라는 것 나는 날 증오해, 죽고싶어 극단의 반란 part2. 유니폼과 획일성 지위추구에서 쿨 헌팅까지 코카콜라 식민지화 인도, 고마워요 우주선 지구호 결론. 좌우의 신화를 넘어서. 이 책의 시작은 광고와의 투쟁을 선언한 애드버스터지가, 자사의 운동화를 판매한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요즘 여성 패션 잡지에서 장바구니를 '에코백'이라고 해서 팔거나, 그런 티셔츠를 파는걸 본 적이 있다. 수익금은 물론 환경을 위해 기부되지만, 아마 직원들의 인건비를 포함한 모든걸 다 빼고 남은 수익금이 얼마나 될런지는 모르겠다. 어쨌던 에코백을 보면서, 집에 널려있는 비닐봉지나 쇼핑백을 들면되지 꼭 'Echo'라고 써있는 빽을 살 껀 또 뭔가라고 생각햇다. 그치않아? 이 엄청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과, 훌륭한 책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60년대 미국에서 물질주의와 탐욕을 비난하고, 매카시 시대의 원칙과 획일성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신세계를 건설하기 시작했지만 40년후에 '체제'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소비 자본주의는 수십년의 반문화 반란을 겪고 이전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모습으로 부상했다. 이 책에서는 수십 년에 걸친 반문화 반란이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것은 반문화 사상이 기대는 사회 이론이 허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매트릭스에 살지 않으며 스펙터클에서 살지도 않는다. 1. 반문화의 탄생 커트 코베인의 죽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술과 특히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할말은 아니지만, 책에 나온대로라면 얼터너비트한 음악을 바랐던 너바나가 대중적 성공을 거듭할수록 커트 코베인은 두가지를 조화시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자살을 통해서만 자본에서 '펑크 록은 자유'라는 개념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책에 뒤 파트에서 '진정성'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진정성은 대부분 상업성이 없다는 말로 이해 가능하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순간 그는 자신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성공한 랩퍼들이 "생생하게"자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스튜디오 갱스터"가 아님을 증며하기 위해 총을 휴대하고 감방에 가며, 심지어 총을 맞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반문화를 이끄는 주동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진짜 급진적이며 사회에 커다란 도전이라고 믿었다. 세상은 매트릭스와 같은 것이고, 이런 불협화음을 통해서 모순을 인식하고 빨간약을 선택함으로써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반문화 반란자에 따르면 결국 전통적인 좌파정치의 문제는 피상적이라는 것이다. 좌파정치는 '단순히'제도적 변화만을 목표로 삼았다. 반면에 반문화 반란자들은 더 깊숙한 층의 억압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반문화의 개념은 뛰어난 천재-포섬(co-optaion)을 설명한다. 체제가 강요한 '억압'은 마녀사랑처럼 노골적이지 않고, 체제는 상징들을 전유하고 '혁명적' 내용을 비운 후에 상품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판매함으로써 저항을 '동화'시킨다. 이 장을 읽는데, '세대를 가로지르는 반역의 정신-쿨'이라는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본적은 없지만 그 책에서 주장하는게 바로 이런게 아니였을까. 빨간약 한번만 먹어봐. 2. 프로이드, 캘리포이나에 가다. 이 저자가 책을 너무 흥미있게 잘 써서, 내 언어로 새롭게 써야 할 필요성을 조금도 못느끼겠다. 이장은 물고기들에게 바다 밑 생활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축축하다'라는 말을 빼뜨릴 거라고 시작한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우리가 프로이드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기존중", "부정", "폐쇠성,", "잠재의식". 하지만 잠재의식이 있다는걸 어떻게 의식할 수 있을까. 따라서 이것은 명백한 이론일 뿐이지만,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잠재의식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저자는 프로이드가 아니였다면 '반문화'개념이 지금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했으럭라고 말한다. 프로이드에 따르자면 '문화 전체가 억압 체계'이다. 나는 안본영화 아메리칸 뷰티 얘기를 하는데,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50년대의 반문화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암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단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린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맹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히피 대 파시스트의 대결이다. 반문화 반란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문화적 저항행위가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에 대해 자신들 스스로 납들하려고 굉장한 노력을 쏟았따. 아메리칸 뷰티에서 레스터가 살해되어야만 하는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그의 행동이 기존 질서에 너무나 심가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츠더라도 막아야만 한다는 신념을 재확인시키려는 의도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대해 고심했던 부분은 "일이란 일은 몽땅 다 하는 사람들이 찢어지게 가난한 반면에 부자들은 한가로이 앉아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였지만, 지금 반문화 쪽의 비판은 몹시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여서 그들이 말하는 "사회 바로 잡기"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3. 정상적이라는 것. 반문화 운동은 거짓 반란일 뿐이다. 미국에서 유행한 '그남자 그여자의 연애기술'이라는 책이 60년대 스타일의 책이 히트를 했을때, 그 퇴행적 규칙들에 사람들은 분노했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나쁜 규칙도 무규칙보다는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가 필요없다는 생각과 규칙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별로 다르지 않다. 여기서 다시 아메리칸 뷰티와 나는 모르는 어떤 영화에서의 강간에 비슷한 성적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내가 얼마전에 분노했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과 일치한다는걸 발견했다. 이런 시점에서는 주인공의 지극히 착취적인 성적 행동이 그의 성욕을 억누르는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근거로 합리화 된다. 억압된 자아가 있건 말건, 정상적으로 살라고. 참을 성 있게 줄서서 기다리는 얼굴 없는 대중들은 수십 년 동안 경멸과 조롱의 대상-대중 사회의 모든 잘못된 것을 나타내는 상징-디 되었다. 필연적으로 주인공은 대중의 '아무 생각 없는 순응'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줄을 서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순응이 정말 아무 생각 없는 행동일까? 줄을 안서고 끼어드는건 생각 있는 행동이고? 무분별하거나 낣은 관습들에 반기를 드는 저항 행위와 합법적인 사회규범을 위반하는 행위를 구별해야 한다. '불찬성'과 '일탈'을 구별해야 한다. 자기기만 때문에 일탈 행위에 가담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동이 일종의 불찬성이라고 믿는다. 군비경젱을 죄수의 딜레마와 비교해보면, 당신이 방어적이건 공격적이건간에 당신이 군비를 올려서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획득할수록 상대방도 군비를 올려서 그 전의 '안정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결국 양쪽 모두 군비는 증가하지만 어느 누구도 더 높은 '안정성'을 얻지는 못한다. 한 실험에서 "위한실험"이라 이름붙인 학생들에게 자기 집에서 1시간동안 마치 가족이 아니라 하숙생인 것처럼 행동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적인 사이가 되는 걸 피하고 정중한 호칭을 사용하며, 질문에만 짧게 대답하고, 지극히 신중하고 공손하게 행동해야 했다. 가족들이 평소와 다른 이런 행위를 장난으로 받아들인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대부분 이런 특이한 행동은 사회관계에 심각한 와해를 초래했다. 많은 가족들이 일탈에 명백한 적대감을 표현했다. '정상적이라는 것'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성취하고 유지하려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신뢰의 체계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것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위한 필요조건인 신뢰를 구축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일상의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4. 나는 날 증오해, 죽고 싶어 지난 10년간 소비주의를 맹렬히 비난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파이트클럽과 아메리칸 뷰티같이 현대 소비사회를 고발하는 영화들이 성공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소비주의를 비난하면서 아직도 소비주의 사회에 살 수 있는걸까? 대답은 이것들은 대중사회 비판을 다시 진술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소비주의를 강화시킨다. 수십 년간 시장의 추진력 역할을 해 온 것은 순응이 아니라 '반란'이었음을 그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의 no logo에서 이건 어찌나 잘 나타나 있는지,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무엇이 '쿨'한 일이고 어떤 제품을 통해 '쿨'해 질 수 있는지 강제로 교육받았다. 이건 마케팅 서적 같잖아?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지만,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도 있다. 국민총샌상이 1인당 미화 1만 달러 정도에 이르면, 그 이후의 경제 성장은 평균적 행복을 높이는게 기여하지 못한다. 일정 정도 이상의 경제 성장이 행복의 양상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작아진다. 과거에 우리는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노동의 필요가 더 사라지리라 생각했지만, 20년동안 북미 지역의 평균 노동시간은 증가했고, 기초생활수준은 옛날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그 돈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대답은 소비재들이다. 우리의 행복의 양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그 소비재를 '충동강박'에 의해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우리를 '구별'해주는 물건에 돈을 쓴다. 그 우월감이 더 쿨한 것이든(나이키 운동화), 좋은 연줄을 과시하는 것이든(쿠바 시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든(싱글몰트 스카치), 취향이 좀 더 특별한 것이든(스타벅스 에스프레소), 윤리적으로 우월한 것이든(바디샵 화장품) 또는 단순히 더 부유함(루이 뷔통 가방)을 보옂는 것이든 관계없다. 다시말해, 소비주의는 남보다 우월해 보이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산물인 것 같다. 문제는 경쟁적 소비이다. 게다가 소비주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구매하는'것에 대한 비판인 듯하다. 돈으로 행복을 사지는 못하지만, 이웃들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할 경우 그 사람의 행복감을 현저히 높여준다. 좌파의 눈에는 소비주의가 교활한 부르주아가 노동자 계급에 가하는 어떤 강압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소비주의는 개인의 탓이다. 사실 소비주의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더 심각하다. 사회적 지위는 달느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적용되기 때문에, 지위가 더 낮은 그룹의 사람들이 상층 그룹의 사람들보다 수입의 더 많은 부분을 경쟁적 소비에 기꺼이 더 쓰려 한다. 상층계급의 사람들은 이미 지위가 높기 때문에 지위를 더 얻고자 그다지 큰 희생을 하려 하지 않는다. 세뇌를 당해서 소비하는것이 아니다. 물질재화와 지위재화를 구분해야 한다. 지위재화의 부족은 내재적이여서 우리가 원한다고 해도 더 많이 생산해 낼 수 없다. 도시 거주자의 수입은 거의 전부 경쟁 소비에 들어간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경쟁 소비가 반드시 과시적 소비가 아닐 수도 있으며 반드시 부러움이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포르쉐를 사는것보다 걸어서 출근이 가능한 거리에 사는것이 더 돈이 많이 들지만 이런 방식은 눈에 띄지 않는 경쟁소비이다. 재화가 구별원의 역할을 한다면 재화의 가치 중 적어도 일부가 배타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화는 누구나 다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유주가 소규모 클럽의 구성원임을 확인해주며 이들을 대중들과 구별해준다. 그러므로 순응과 구별은 항상 짝을 이룬다. 이런 경쟁의 결과는 모든 소비자들이 하루를 마감할 무렵에는 대개 동일한 소비재를 갖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순응은 그들이 의도한 바가 결코 아니다. 5. 극단의 반란 유나바머의 선언문과 알고어(엘고어인듯하지만)의 선언문에는 큰 차이가 없다. 유나마버의 글에는 반문화적인 낯익은 요소들이 있다. 어디까지가 반문화이고 어디까지가 반사회적 행위일까. 대안이 광기로 타락하는것은 어느정도일까? 반문화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일탈과 불찬성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의 급진 정치운동보다 미치광이와 부적격자가 정도 이상으로 많이 참여한다. 마이클 무어에게 콜럽바인 대학살은 단순한 범죄 행위가 아니라 미국 사회와 역사 전체에 대한 고발이였다. 무어는 총기에 '반대하는'입장으로 끝을 맺는다. 총기 규제는 너무 피상적이여서 "단순한 제도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총기 규제만 하더라도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테지만, 충분히 심층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것도 거부하는것이 극단적 반란이다. 반문화는 범죄에 관해서 천진난만한 생각을 가지게 하고, 정신질환에 관련해서는 미화를 부추겼다. Part 2. 1. 유니폼과 획일성 교복은 전 세대에게 당대 사회에서 영혼을 파괴하는 모든 것을 상징하게 되었지만, 미국의 첫 베이비 붐 세대인 빌 클린턴마저 공립학교의 교복착용을 지지하고 나섰다. 클린턴의 말에 따르자면 "교복 착용으로 십대들이 유명 디자이너 재킷을 두고 서로 죽이는 일이 없어진다면, 공립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복을 입도록 하는게 좋지 않겠는가."교복을 없앴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기강의 와해가 아니라 만연한 소비주의였던 탓이다. (이쯤해서 이렇게 책을 타이핑 치느니 한 권 사는게 나았을꺼라고 생각한다). 2. 지위 추구에서 쿨 헌팅까지 조금은 지나치게 비싼 어떤 것을 마지막으로 산 때를 생각해보자. 왜 그 물건을 샀는가? 십중팔구 '정말로' 쿨하기 때문잉ㅆ을 것이다. 그렇다면 쿨이란 무엇일까. 쿨을 현대 도시사회의 핵심 위계질서로 생가가는 것이 최선이다. 모든 사람들이 상류 계급이 될 수 없고, 모든사라이 훌륭한 취향을 가질 수 없듯이 보두가 쿨할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쿨한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쿨이 궁극적으로 구별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창조적 계급은, 쿨한 작업 환경을 갖는 게 중요한 만큼이나 아무 도시에서나 일하려 하지 않는다. 주소가 가족력보다 더 많은 것을 마케터에게 말해준다. 광고는소비자에게 새로운 욕망을 일으키거나 제품군 전체의 총소비를 늘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쟁사들에게서 고객들을 빼앗아 오는 것이다. 세법의 간단한 변화 하나가 전 세계의 반문화 운동 전체를 합한 것보다도 광고 억제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효과 있는 이런 제안들이 문화정치, 세계혁명, 그리고 기타 멋진 목표들 때문에 홀대받고 있다. 3. 코카콜라 식민지화 동질화가 왜 나쁜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제외하더라도, 대량 생산을 통해 개인들이 그렇지 않았으면 가지지 못할 물건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 심미적 결과가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근거를 들어 기회를 박탈하는것은 무척 불쾌한 방어이다. 빈곤 축소와 동질성 축소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을 해소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반글로벌화 활동가들이 세계무역기구의 주요 회의를 모두 반대하면서, 제 3세계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직접 충돌하게 되었다. 4. 인도, 고마워요. 서양인들은 수십년동안 제 3세계 국가들을 자기발견을 위한 개인적 여행이 배경으로 사용해 왔다. 현실도피는 반문화의 핵심 과제가 되었다. 고귀한 야만인의 개념이 받아들여지지만, 아메리카 토착민들에게는 지독한 상업주의가 있었다. "어머니 대지"는 토착민들의 개념이 아니라 반문화에서 생성된 개념이다. 반문화 활동가들이 자주 쓰는 표현은 '진정성이 없다'이다. 진정성은 어떤 의미인가. 진정성은 상업화의 배재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진정한 여행 경험'은 '쿨'과 마찬가지로 지위 재화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습득할수록 그 가치를 상실하는 "문화 자본재"이다. 반문화 반란자들은 좀 더 이국적인 장소를 찾아 지구를 샅샅이 뒤지는 끊임없는 노력 덕에 수십 년 동안 대중 관광의 '돌격대'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5. 우주선 지구호 기술이 불편한 거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거래라는 생각은 우리 문화의 표준적 수사이다. 기술은 모든것을 포위한 광대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가 적절한 기술의 사용에 대한 성격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가장 간단한 기술인 "모두가 그렇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대답해 주지 못한다. "생각은 세계적으로 실천은 지역에서부터."라는 우주선 지구호의 심리 상태는, 우리가 중간 규모인 국가의 정치/경제 제도를 피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심층생태학은 생태 중심주의의 원칙을 토대로 하고, 표층생태학은 환경문제를 인센티브 문제로 파악한다. 이산화탄소 배출권제를 둘러싸고서, 이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산화탄소를 규제할 수 있었던 방안임에도 불구하고 그린피스는 '자연의 상품화'라고 비난하며 반대했다. "지구먼저!" 지지자들은 체제와 의식을 총체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고 믿는다. 나중에 다시 정리하기로 하자. 우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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